실어증

뇌신경계가 지배하는 말·언어활동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기능 중 하나입니다. 평상시에는 언어로 생각하고 말을 하는 데 그다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막상 신경계 손상으로 인하여 말·언어활동에 장애가 생기게 되면 여간 불편한게 아니며, 그 모든 활동을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해야만 하는 상황이 됩니다. 임상현장에서 우리는 신경체계 손상으로 인하여 말·언어활동에 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적잖이 보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신경언어장애의 대표적인 증세인 실어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정의

실어증(aphasia)은 신경계 손상으로 후천적으로 생기는 언어장애입니다. 언어는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의 네 가지 언어영역을 통하여 실현될 수 있는 언어 행위를 일컫는데, 실어증은 이 네 가지 모든 영역에서 관찰되는 언어장애입니다.

 

실어증은 언어의 능력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수행하는 데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효율성이란 얼마나 능률적으로 언어 정보를 저장하거나 유출할 수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언어능력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나 효율성 저하로 인하여 저장이나 유출ㅇ에 어려움을 보이는 경우를 들어봅시다. 어떤 환자는 동일한 언어자극을 주었을 때 오전에는 틀린 반응을 보였으나 오후에는 정반응을 보이는 수행능력의 변이성(variability)을 보입니다.

또 어떤 환자는 물건을 보여주고 그 이름을 말해 보라고 하였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다가도 음소단서(phonemic cue ‘시계’에 대해 ‘시’라고 말해 줌)를 제시하면 정확한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실어증은 다른 인지기능장애나 지각기능 감소, 운동기능 감소 등에 기인하여 생기는 언어장애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기억력 등과 같은 인지기능에 뚜렷한 장애를 보이는 치매환자들에게 관찰되는 언어장애는 엄밀한 의미에서 실어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특정 신경계의 손상으로 인하여 상지운동이나 구강기관운동 등의 속도가 느리게 되어 전반적으로 언어반응속도가 저하된 경우도 실어증으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환자가 말장애로 인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글로써는 정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실어증이 아니라 말장애로 간주합니다.

 

2. 원인

실어증 자체는 ‘병’의 이름이 아닌 그 병으로 기인되는 ‘증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어증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흔히 뇌졸중이란 부르는 혈관성 질환입니다. 이 혈관성 질환은 다시 허혈성과 출혈성으로 나뉘는데, 글자 그대로 허혈성은 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지면서 담당 세포에 혈류 공굽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경우고, 출혈성은 혈관이 터지는 경우입니다. 실어증을 유발하는 비혈관성 원인으로는 뇌외상(head trauma), 뇌종양(brain tumor), 뇌염(brain infection)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3. 분류

실어증의 분류는 전통적으로 이분법을 사용하여 수용성(receptive) 대 표현성(expressive) 실어증, 감각성(sensory) 대 운동성(motor) 실어증, 유창성(fluent) 대 비유창성(nonfluent) 실어증 등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임상현장에서는 이분법보다 좀 더 세분화된 분류가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실어증은 발화의 유창성, 청각적 이해력, 따라말하기 능력 그리고 이름대기능력을 측정하는 4가지 과제의 수행력에 따라 8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류법은 미국 보스턴 실어증학파의 분류기준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 8가지 유형은 베르니케 실어증(Wernicke’s aphasia), 초피질감각실어증(transcortical sensory aphasia), 전도실어증(conduction aphasia), 명칭실어증(anomic aphasia), 브로카실어증(Broca’s aphasia), 초피질운동실어증(transcortical motor aphasia), 혼합피질실어증(mixed transcortical aphasia), 전반실어증(global aphasia)을 말합니다.